낭만, 체코 5 - 프라하 거리로 보는 6월 체코 날씨

2021. 3. 31. 21:16여행 일기장/낭만,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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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체코

2019.06.05 ~ 2019.06.10

4박6일 

6월 프라하 날씨

 

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첫 번째 날씨는 우중충한 먹구름이 가득하고, 미친듯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처음 본 체코의 날씨는 꽤 맑은 편이었지만, 구름이 꽤나 많았다. 그렇게 점점 구름이 많아지더니, 짐을 내려놓고 숙소를 다시 나갈 때는 꽤나 많은 먹구름이 생겼다. 그래도 일단 버스를 타고 프라하 구시가지쪽으로 향했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4박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먹구름 속에서도 처음 보는 체코 풍경을 즐기고 있었는데, 카를교를 지나면서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를교의 끝에 다다랐을 때부터 비는 정말 표현 그대로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만 안 불었지, 웬만한 태풍은 저리가라의 비가 쏟아졌다. 우산을 쓰고 있어도 비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맞았다. 우산은 단 1%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그냥 비를 피해서 최대한 달릴 뿐이었다. 소나기라고 믿고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카페를 찾아 나섰지만, 눈에 보이는 카페들은 입구까지 사람이 가득차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최대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잠깐 몸을 숨길 뿐이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비를 많이 맞아본 날이었고, 평소 싫어하던 비에 해탈한 날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비 맞는게 싫어서 짜증이 났는데 옷이 다 젖고 나니 허탈한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는 '신발이 젖을까봐, 옷이 젖을까봐, 앞머리가 죽을까봐, 가지고 나간 우산이 귀찮아질까봐, 또 우산을 잃어버릴까봐..' 비만 오면 걱정이 가득했고, 그 걱정을  하는 시간이 힘드니까 비를 싫어했다. 그리고 그 날, 프라하 여행 첫 날 잔뜩 비에 젖었다. 신발과 옷이 젖었고, 여행사진은 찍을 수도 없었고, 방금 머리를 감고 나온 것처럼 미역같은 머리카락이 되어 있었다. 우산은 잃어버리지는 않았지만 무용지물이었고, 여행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젖은 신발 대신 챙겨온 다른 신발을 신으면 됐고, 옷은 빨아서 말리면 그만이었다. 물미역이 된 내 머리카락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심지어 나조차도), 사진은 못 찍었지만 비가 쏟아지던 풍경과 해방감이 느껴지던 상쾌함은 생생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 간 프라하에서 싫어하던 비로부터 통쾌함을 느꼈다. 

 

체코에서 만난 두 번째 날씨는 "맑음". 여행 첫 날을 제외하면 체코 여행기간 내내 날씨가 맑았다. 맑은 하늘에 햇볕은 쨍쨍했다. 오래 걸으면 머리, 발, 팔이 뜨겁긴 했지만, 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맑아도 습도는 높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썬크림과 선글라스가 필수인 날씨였다. 어쩌다 바람이 불면 신기할 정도였다. 날씨 덕분에 프라하와 체스키크룸로프를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설렜다. 

나는 날씨가 주는 설렘에 취해서 마냥 들떠서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남편은 여행내내 내 뒷모습을 찍고 다녔다. 나는 본 적 없는 내 뒷모습, 건물을 구경할 때 내 모습, 예쁜 소품을 발견했을 때 내 모습, 길을 찾을 때 내 모습, 지쳐서 걸을 때 내 모습 등 나는 볼 수 없는 모습을 그는 애정으로 계속 기록을 남겼다. 그 덕분에 체코의 모든 날씨, 많은 장소에서 나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체코에서 만난 날씨는 "선선한 밤"이었다. 맑은 날씨와 뭐가 다를까 싶긴 하지만, 체감상은 확실히 달랐다. 일단 밤 9시까지도 떠 있던 해가 지면서 뜨거운 햇빛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프라하 곳곳은 불빛으로 밝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건 아니지만, 습도가 높지 않으니 해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꽤 선선해진다. 그리고 살짝 바람이 불 때면 잠깐이지만 쌀쌀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똑같이 맑은 날씨여도 낮과 밤의 체감기온 차이가 있었듯이, 분위기도 달랐다. 밤이 된 체코는 길거리, 다리, 건물 등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이 따뜻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분위기에 취해 맥주를 찾았다.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시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누군가 체코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꼭 밤의 여유를 즐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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