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글쓰기 12기 <행복을 찾아서> 2차 미션

2022. 4. 19. 22:11글쓰기 수첩/글쓰기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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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글쓰기 12기

테마: 영화 <행복을 찾아서>

2022.04.18(월)~2022.05.13(금)

누가 셔츠도 입지 않고 면접을 보러 왔는데 그 사람을 고용한다면 이유가 뭐겠나?

내가 팀장이 된 이후에 처음으로 직원 면접이 있는 날이다. 면접관이 처음이라서 긴장이 된 걸까? 새로운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설렜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5시 5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잠시 멍해져 있는데, 이 회사에 처음 면접보던 날이 생각나서 저절로 웃음이 났다. 잠깐 추억을 곱씹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신입직원 채용, 3층 교육실, 2022.04.19(화) 10시>

회사 정문, 엘리베이터 앞, 3층 교육실 앞에 신입직원 채용을 안내하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조금 긴장되고 많이 벅찬 감정을 품고 교육실 문을 열었다. 동료 팀장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며 예비신입직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았다. 소규모 회사이기 때문에 면접을 보는 인원은 3배수에 해당하는 6명이다. 면접관 3명과 지원자 1명이 15분 내외 정도로 면접이 진행된다. 지원자들 간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아서 면접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이를 다시 숙지하면서 약간의 부담감이 생겼을 때, 10시. 면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안녕하세요"

웃으며 들어오는 지원자는 민트색 반팔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거기다 바지는 반바지를 입고 있는게 아닌가! 난 순간 벙쪄서 지원자의 인사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옆을 보니, 다른 면접관들도 나와 비슷한 상태인 것 같다.

'뭐지? 요즘 면접 트렌드가 바뀌었나? 아니! 아무리 트렌드가 바뀌어도 이럴 수가 있나? 정장은 아니더라도 셔츠 정도는 입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니, 나 지금.. 꼰대 같나?'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세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내 생각은 옆 자리 면접관의 인사 덕분에 끝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면접관들이 벙찐 5초 정도 사이에 지원자는 의자 옆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복장으로 인한 첫 인상과는 달리, 지원자는 면접 중 질문에는 훌륭하게 대답했다. 본인이 하게 될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있었고, 이전 직장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장점을 잘 어필했다. 그동안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한 점도 면접, 이력서, 자기소개서 간 일관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답변들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점수를 매길 수가 없었다. 면접평가표를 기준으로 하면 모두 만점에 가까웠지만, 복장이 계속 거슬렸기 때문이다. 결국 면접이 마무리 되고 있을 즈음 나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했다.

"지원자님이 면접관이라면, 누가 셔츠도 입지 않고 면접을 보러 왔는데 그 사람을 고용한다면 어떤 이유로 고용하시겠습니까?"

옆 면접관이 본인도 묻고 싶었다는 듯 웃으며 지원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또 다른 면접관은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태도로 면접평가표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자는 0.1초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옷 취향만큼이나 진로가 명확한 사람이었겠죠. 자신에게 딱 맞는 회사를 찾아서 저절로 굴러온 복덩이랄까요?"

그 순간 나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복장만 아니면 이 자리에 딱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 머릿 속에 들어왔다 나간걸까?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면, 저 사람은 그만큼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고 우리 회사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원자가 인사를 하고 나간 후, 나는 모든 평가항목에 만점을 주었다.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첫 면접이 모두 끝난 후, 함께했던 면접관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 면접관 중에는 나의 사수였고 4개의 팀을 관리하는 부장님도 있었다.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피식 웃던 부장님이 내게 말을 걸었다.

"김 팀장이 그런 질문해서 웃겼어. 셔츠 그거"

"네? 그게 왜요?"

"기억 안 나? 김 팀장 우리 회사 면접볼 때 운동화 신고 왔잖아."

"제가요?"

"네~ 너가요~"

그럴리가 없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회사 면접을 보며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았는가? 나름 생생한 기억이었는데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부장님이 누군가와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에이~ 저 아니에요, 부장님. 그런 기억 없는데"

"정확히 너입니다. 정장에 운동화가 너무 돋보여서 면접 보는 내내 신경쓰였거든. 그래서 내가 면접장에서 운동화는 처음 보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아! 기억났다!"

부장님이 마치 면접장에 있는 것처럼 표정과 말투를 흉내내며 얘기하니 정확히 기억이 떠올랐다. 부장님이 알고 연기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식당에서의 눈빛! 내 얼굴과 운동화를 번갈아 보다가 호기심 반, 비아냥 반의 눈빛으로 보던 그 순간과 똑같았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여전히 기억에 없었다.

"그때는 기억났는데, 제가 뭐라고 했어요? 그건 모르겠는데"

"흐흠! 정확히 이렇게 말했지"

부장님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손을 무릎에 올리고 다소 경직된 자세로 목을 가다듬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구두보다 운동화를 좋아합니다! ☆☆센터보다 ★★를 좋아합니다! 저는 일편단심입니다!"

옆 자리에 있던 이 팀장과 부장은 낄낄거리며 웃었고 난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 단순하고 낯간지러운 말을 큰소리로 했다니.. 창피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게 분명했다.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나를 보란듯이 더 놀리기 위해 이 팀장이 덧붙였다.

"김 팀장님에 비하면 아까 그 지원자는 말도 참 조리있게 잘했네요"

"그렇지~ 그때는 나름 순수하고 순발력도 좋다고 생각해서 뽑았는데, 그 날 따로 챙겨온 구두를 버스에 놓고 내린 덜렁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어쨌든 그때 내가 잘 뽑았지, 그 이후로 9년을 쭉 우리 회사에서 일하며 팀장까지 됐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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