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6. 07:55ㆍ글쓰기 수첩/글쓰기모임
※ 참고: 트레바리 <씀-눈부신 친구>는 '매일 한 문장 쓰기', '릴레이 소설 쓰기', '책 읽고 주제에 맞춰 독후감 쓰기'를 진행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 간, 혼자 릴레이 소설 쓰기>
5월 10일 월요일 - 그림
그 정도의 추억을 자각하며 씁쓸해지고 있던 순간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너 수경이 아니니?”
은희였다.
“어, 은희?”
“어머 정말 너 맞구나. 설마 하고 와봤는데 진짜네, 반갑다 애”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럼. 난 딸이랑 약속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며 은희가 건너편 테이블에 있는 딸을 가리켰다. 젊음의 당당함이 부러웠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그 후로 잠깐 우리는 가벼운 안부를 이어갔다. 시인이자 작가를 꿈꾸던 은희는 두 명의 자녀를 키우고 가끔 문화센터 모임에 나가는 주부가 되어 있었다.
“어휴, 그때는 어렸지. 뭐든 다 될 수 있을 줄 알고. 그래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야. 내 작품 하나도 못 쓴 인생이지만, 시집을 함께 읽을 수 있는 두 딸의 엄마로서의 삶도 좋더라고.”
주절주절 떠들던 은희는 갑자기 진지하고 조금 느리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신기하다. 꿈이 없던 너는 이렇게 방송작가가 되었는데,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싶던 나랑 주연이는 전혀 글을 쓰고 있지 않으니까.”
“아, 그랬나? 주연이는 잘 지내?”
“나도 몰라. 몇 년 전에 그림책 모임에서 한번 본 게 다야. 여전히 말이 별로 없었는데, 시험 오래 준비하다가 잘 안 돼서 다른 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인지는 말을 하더라고. 첫날 이후로 안 나와서 더 자세한 소식은 몰라.”
“왜? 왜 안 나왔는데?”
“글쎄, 내가 불편했나? 우리가 싸우진 않았어도 그만큼 솔직하지도 못한 사이였잖아.”
5월 11일 화요일 - 서점
아까 내가 한 생각을 은희도 이미 하고 있었다니, 놀랍기보다는 ‘역시’라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은희와 주연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더라도 지금은 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은희는 딸과 함께 시집을 모아놓은 동네책방에 가야 한다고 하며 일어섰다.
5월 12일 수요일 - 성숙
딸에게 가는 은희를 보며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은희와 주연이가 내 뒷담화를 하던 그 순간처럼 다양한 감정이었지만, 찝찝하고 답답하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좀 더 상쾌한 기분이었다. 은희의 딸이 가진 그 젊음, 20여 년 쯤 전에는 나도 가지고 있던 그 젊음이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때는 나에게만 갇혀 모르고 있던 것들을 지금은 안다. 그때는 가질 수 없었던 성숙한 아름다움을 지금은 선택할 수 있다.
5월 13일 목요일 - 고민
그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마음 속에 새로운 고민이 올라왔다. 아니, 고민보다는 충동에 가깝다.
‘은희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5월 14일 금요일 - 술
나는 카페를 나서는 은희 모녀를 다급히 따라가 소리쳤다.
“은희야, 우리 다음에 술 한잔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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